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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숙 여의도책방-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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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숙 여의도책방-9

파업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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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숙

국회사무처 부속한의원 원장

(前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 교수)


지난 7월 23일 오전 7시 국회 정문 앞에서 최대집 의협회장을 비롯한 의협 임원들은 ‘무분별한 의대정원 증원 반대 기자회견’을 한 후 8월 14일, 1차 총파업을 강행하였다. 그로부터 12일 후 정부와의 막판 협상에서 최종 타결에 실패했다는 이유로 8월 26일부터 3일간 의협은 또다시 2차 총파업을 이어갔다. 2차 총파업 후 일주일 내로 정부와 타협점을 찾지 못한다면 이번에는 9월 7일부터 3차 무기한 파업에 들어가겠다고 밝혔으나 다행히 9월 4일 정부와 의협은 합의문에 서명하면서 의대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신설은 코로나 안정 후 원점에서 재논의 하기로 합의하였다. 

의협 집행진과는 별도로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집단행동의 지속을 시사했다가 파업 18일만인 9월 8일 오전 7시부터 의료 현장으로 복귀하기로 결정하였고 현재 남은 문제는 의대생들의 국시구제 여부와 최대집 회장의 탄핵 여부이다. 7월 23일 기자회견부터 2개월여에 걸친 의사들의 단체행동은 잠시멈춤 모드로 일단락된 상황이다. 


의사들의 파업뉴스 접하며 제1·2차 한약분쟁 떠올라

의사들의 짧고 굵은 파업뉴스를 접하다보니 27년 전 한의대생들의 가늘고 길었던 파업의 추억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약사법 시행규칙 제11조 제1항 제7호의 ‘약국에서는 재래식 한약장 이외의 약장을 두어 이를 청결히 관리할 것’이라는 약사의 한약취급금지 조항을 1993년 3월 5일 그 당시 보건사회부(오늘날의 보건복지부)에서 일방적으로 삭제하였고, 이는 약사도 한약을 임의조제할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되면서 한의대생들의 데모를 야기하게 되는데 바로 1993년 1차 한약분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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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2년 후 1995년 9월에는 보건복지부가 경희대와 원광대에 정원 20명으로 약대 안에 한약학과를 둔다는 안을 발표하자 한의대생들은 한의대 내 한약학과 설치, 한의약법 제정, 한의약정국 설치 등을 주장하며 수업거부에 돌입하였고 무려 1년 6개월간 투쟁을 지속한 결과 한의대생들은 집단유급을 당하게 되었다. 1995년 2차 한약분쟁의 참혹한 결과이다. 

이 분쟁의 결과로 92학번에서 96학번에 해당하는 전국의 한의대생들은 1년이라는 시간과 두 학기분의 등록금을 도둑맞았다. 전교 1등 출신들이 대부분이었던 한의대생들은 그 당시 교수들 강의를 듣지 않아도 실력을 척척 쌓아가는 자기주도학습과 비대면 강의에 최적화된 스마트로 똘똘뭉친 집단지성 그 자체였다. 그래서였을까? 그토록 크나큰 국가적인(?) 손해가 났음에도 그 누구도 사과를 하거나 책임지는 이들은 없었다. 크고 작은 상처와 금전적 손해는 고스란히 학생들 개개인의 몫이었다. 그 때부터 이미 한의사들은 그 어느 집단보다도 혹독한 각자도생의 삶을 강요받게 되었는지 모른다. 총성없는 전쟁터가 된 개원가는 이러한 한약분쟁의 후유증에서 비롯된 잔인한 결과물 아닐까...하는 생각도 잠시 해본다. 

의사 파업 기사에 달린 수많은 댓글들 중에는 “잘난 너네들 없어도 별일없이 잘 살아갈 수 있다”는 호연지기로 무장한 글들도 있었고, 환자로서 직접 겪은 의료사고 혹은 불친절하고 실력없는 의사들에 대한 비난글도 많았다. 

그리고 최근 의료사고를 다룬 시사 프로그램을 요약해 놓은 글들도 꽤 많이 보였다. 의협이 정부에서 철회해야 할 4대 악법 중 하나로 거론한 첩약의보 관련 기사에 대해서도 조직적인 댓글부대가 가동된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한의사에 대한 도를 넘는 욕설과 패륜적인 표현으로 가득찬 댓글들 일색이었고 팩트체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사실의 의도적 곡해가 심해도 너무 심한 글들이 넘쳐났다. 

 


황종국 판사, 제도권 의학의 비판적 시각 다룬 ‘의사가 못 고치는 환자는 어떻게 하나?’

의사, 한의사들이 온라인상에서 이렇게 한꺼번에 비난받는 현실을 접하다보니 면허증 있는 의사, 한의사가 못 고치는 병이 너무도 많으며 그러한 이유로 민중의술을 부활, 장려해야 한다고 줄기차게 주장하셨던 황종국 판사의 『의사가 못 고치는 환자는 어떻게 하나?』(1, 2, 3권) 라는 책이 떠올랐다. 황 판사는 자신이 비후성비염 수술후유증으로 오랜 시간 고생을 하였고 부산지방법원 의료사건 전담재판부의 재판장을 맡으면서 의사들의 수술이나 치료로 후유증 혹은 사망에 이르는 별의별 희한한 의료사고들을 재판을 통해 끊임없이 경험을 축적한 분으로 “양의사들이 병을 잘 못 고치는 이유”, “한의사들이 병을 잘 못 고치는 이유”라는 챕터에 현재의 의학교육만으로는 현대의학도 한의학도 제대로 배워서 병을 고치는 단계에까지 도달하기 어려운 분명한 한계점을 가지고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특히 판사로서 재판장에 도착한 온갖 의료소송을 집중적으로 접하다보니 제도권 의학에 대해서 회의적이고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지 않기가 오히려 어려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대의학의 부작용에 관해서는 『의료과실과 의료소송』(육법사, 2002)이라는 책에 실린 판례들을 간추려서 거의 20페이지에 나열하고 있는데 이 판례들에 거론된 질병과 의료사고의 기록들을 차분하게 읽다보면 의료행위 그 자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의료적 과오를 의미하는 의원성 장애(iatrogenic disorder)라는 병명이 억지스런 조어가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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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판사의 한의학에 대한 비판은 한의학의 근본을 잃고 기득권에 안주한 채 스스로 한의학의 입지를 좁혀버린 한의사들의 무능함에 대한 지적이 대부분이었다. 기감(氣感)에 대한 수련을 필요로 하는 침, 뜸, 사혈, 수기요법 등은 외면하고 방치한 채 처방책 뒤적거려서 한약 처방 위주의 진료를 하고 있으니 한의학이 병을 잘 못 고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었다. 

한의학의 주된 치료방법과 대부분 겹치는 위대한 민중의술인 단식, 침뜸, 부항, 수기요법, 인산 김일훈의 죽염건강법, 음양식사법 등은 한의사들이 경시해온 탓에 면허는 없지만 여기저기 숨어있는 민중의술 계승자들이 너무도 훌륭하게 잘 해내고 있다며 이들을 불법의료로 묶어두지 말고 어떻게든 자격을 주어 의사, 한의사들이 못 고치는 환자들을 살려내자고 강변하신다. 

황판사의 3권의 책이 출간된 것은 2005년. 그 이듬해 2006년에는 4대 일간지에 <민중의술 살리기 국민운동 전국연합 창립대회> 전면광고를 실으며 민중의술만이 난치 질환자들과 의료사고 피해자들을 위한 희망이므로 4월 어느 토요일 국회의사당 앞에 모여 세계 의술의 중흥을 선포하는 총궐기대회를 열게 된다. 

이 광고 하단에 실린 민중의술 관련 단체에는 “고려대학교 침구학연구소”, “국제발관리총연합회”, “김선애 두개천골요법”, “대한카이로프랙틱협회”, “숙명여대 평생교육원 침구복지학회”, “한국오약석신부 발건강법 국제교류협회” 등 300여개의 꽤 익숙한 이름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이들은 2020년 오늘날까지도 유투브에 본인 이름을 걸고 온라인으로 환자상담을 하기도 하고 각 대학의 평생교육원에서 수많은 제자들을 양성하거나 메디컬 상가의 한 귀퉁이에서 치료사 명찰을 달고 다양한 환자들을 몰래몰래 혹은 대놓고 보는 분들일 것이다. 다양한 지하의료 시장에서 면면히 그리고 끈끈하게 한의계와는 일면식도 없는 듯 때로는 한의계의 일부인 것처럼 암약 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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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보에서 3..49% 차지하는 한의진료…

부끄럽고 싸늘한 현실

지난 2개월간 그 어떤 정치나 경제 분야를 뛰어넘어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은 단체는 의협이었다. 의학은 필수재이자 공공재이다. 의사들의 파업이 응급실 환자들과 수술 예정 환자들에게 절대적인 피해를 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로 의사들은 ‘의느님’으로 추앙받는다. 이에 반하여 한의학은 극도로 제한적인 질환에 있어서만 의학의 대체재로 추천되고 취향에 따른 선택재로서 보완기능이 강하다. 한의사들이 한의느님이 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2018년 기준으로 건강보험에서 한의진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3.49%이다. 첩약 급여화 예산이 전체 건보료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0.064%에 해당한다. 응급질환이나 항암제 급여화에 들어가는 비용을 첩약 급여화로 돌리는 것도 아니고 한약 때문에 건강보험료가 오르지 않음에도 “첩약의보화”를 4대 악법에 포함시켜 “효과없는 한의학에 나랏돈 쑤셔박는다”는 프레임으로 지난 2개월간 한의학이라는 단물빠진 고기를 그들은(여기에서 그들을 어떤 특정인들로 한정지울 수는 없을 것 같다) 물고 뜯고 맛보고 즐겼다. 건강보험에서의 3.49%라는 한의학의 아큐파이. 지난 2개월간 온라인에서 첩약의보 관련해서 달린 수많은 댓글만큼이나 받아들이기 부끄럽고 싸늘한 현실이기도 하다. 


건강에 대한 관심 증가…

한의계는 만족시킬 준비가 돼 있는가?

지난 9월 19일 WHO는 성명을 통해 “코로나19 치료를 위한 전통 약재의 임상 3상 규정을 승인했고 전통 약재 임상실험 데이터를 관리하고 감시하는 기구 설립을 위한 헌장과 기준서도 승인했다”고 밝혔다. 이번 발표는 지난 5월 마다가스카르 대통령이 코로나19 치료를 위해 쑥의 일종인 아르테미시아(Artemisia)로 만든 음료(CVO;COVID-Organics)를 마실 것을 촉구한 상황에서 이뤄진 것이다. 이전부터 제기되어온 코로나19 라는 신종 바이러스 질환에 전통 의약품을 사용할 수 있는지에 관한 문제에 대하여 WHO는 아시아와 유럽, 북미 연구소에서 개발한 의약품과 같은 기준으로 전통 약재의 임상시험을 장려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에 소환된 아르테미시아 관련 기사는 2015년 투유유 중국전통의학연구원 교수가 개똥쑥에서 뽑아낸 말라리아 특효약 ‘아르테미시닌’을 개발해 1990년대 이후 말라리아 퇴치에 크게 기여했다는 공로로 2015년 노벨의학상을 수상한 놀라운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었다. 코로나19에 있어서 면봉으로 비강을 후비는 검사 장면이나 백신 개발 뉴스를 접하게 되면 현대의학에서도 마스크와 손씻기 이외의 별다른 해법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한의학적인 치료를 공식적으로 보탤 수 없다는 좌절감에 신종 감염병과 한의학 사이에서 좁혀질 수 없는 거리감을 느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가도 산발적으로 확진자들이 발생했다는 뉴스에 꼭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동충하초 설명회, 산양삼 설명회, 기타 면역기능을 높여준다는 건기식 사업 설명회들을 떠올리면 기존의 제도권 의학을 온전히 못 믿거나 정통 의학 쪽의 치료에 만족을 못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something different를 모색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건강 분야에 있어서의 그 선택적인 수요와 시장의 큰 부분이 한의학이면서도 황 판사의 지적대로 우리 스스로 우리의 영역을 축소시켜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가끔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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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 환자들에게 위로와 응원 건넬 수 있는 

‘보살핌의 의학’ 

“저는 한방이 잘 맞더라구요”, “태어나서 처음 침이란 걸 맞아봅니다”, “동생이 의사거든요. 한의원 가지 말라고 말렸는데 요통에는 침치료가 좋던데요”, “족저근막염인데 체외충격파 받아도 안 낫던데요. 동료가 추천해서 한의원으로 왔어요”, “역류성식도염인데 약 먹어도 비슷하다가 침치료 꾸준히 하니까 인후부 이물감이 확 줄어서 너무 좋아요”

 

임상 한의사들이 날마다 환자들에게 듣는 흔한 대사들일 것이다. 『의사가 못 고치는 환자는 어떻게 하나?』라고 누군가가 내게 묻는다면 한의학적인 치료로 접근가능한 질환인지에 대해서 일단 상담을 해드리고 싶으며 그동안 고생하셨을 환자분의 손을 먼저 잡아드리겠다고 약속하리라. 의학만큼 한의학도 공공재이자 필수템인 이유는 일차적으로 현대의학을 경유했으나 호전을 경험하지 못한 환자들에게 위로와 응원을 건넬 수 있는 인본주의적인 태도를 갖춘 한의사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자신있게 말하리라. 의료는 분명히 보살핌이 기본이기 때문이다. 학부 시절의 투쟁마저 이제는 향기롭게 느껴지다니 역시 가을은 추억의 계절인건가!!!



신미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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