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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약같은 친구’ 그리고 ‘친구같은 보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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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약같은 친구’ 그리고 ‘친구같은 보약’


1(신미숙).jpg
신미숙 국회사무처 부속한의원 원장
 (前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 교수)

 

2019년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했던 대중문화 키워드 중 하나는 ‘트로트’였다. 그 핵심인물인 송가인을 직접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에 미스트롯 콘서트표를 어렵게 예매해 부모님을 모시고 무더위가 절정이었던 2019년 8월 잠실의 케이스포돔을 다녀왔다. 

상상했었던 것보다 훨씬 많은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공연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철 지난 전통가요 혹은 노인들이나 좋아하는 촌스러운 장르라는 편견을 딛고 몇 명의 대박신인들 덕분에 트로트의 인기는 올해도 순항 중이다. 

프로야구와 프로축구에 밀려 대중의 관심에서 거의 사라졌던 씨름 또한 공중파 예능프로그램의 훌륭한 소재로 떠오르면서 그 유행의 징조가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토너먼트식의 대결구도가 주는 긴장감, 그리고 장사들의 건강한 몸짱 이미지는 씨름에 남녀노소 모든 시청자들의 호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트로트도 씨름도 ‘생존’을 위한 힘겨운 ‘각자도생’의 길을 걷다가 우연히 그러나 특별한 계기를 만나 다시 한 번 ‘전성기’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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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보약’…28회 스바루 문학상 수상

 

작년 봄 ‘28회 스바루 문학상 수상작’이라는 띠지를 두른 <읽는 보약>이라는 일본 소설을 제목에 “보약”이 들어있다는 이유만으로 충동구매하여 두세시간만에 뚝딱 읽은 적이 있었다. 반복되는 가슴 두근거림으로 응급실을 자주 방문하던 31세 여자주인공이 네 명의 의사를 만나 별다른 진단도 치료도 없이 지내다가 우연히 한의원(한의사제도가 없는 일본이라서 한의원과 한약방이 책 안에서는 혼용되고 있었다)을 가게 되면서 다행히 증상이 호전되었다는 (한의사 입장에서는) 무척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주인공의 독백 혹은 다른 주변인물들과의 대화 속에서 한의학에 대한 평가 혹은 주관적인 느낌이 자주 등장하는데 예를 들자면 이런 것들이다. “한약도 환자 하나하나에게 맞춰 달여서 마시는 생약을 조합해주는 터라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요컨대 비싸다.”, “한의사한테 진찰을 받았는데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어.”, “그런데 승하느니 쇠하느니, 그런 건 그냥 같다붙이기 아니야?”, “이런 점술 같은 것에 기대는 의료라니, 수상하잖아. 그 병원 괜찮은 데 맞아? 그런데 2천년이나 병을 고쳐온 갖다붙이기라니 그것도 대단하네.”, “서양의학이 있는 지금도 수요가 존재한다는 거쟎아?”, “한의학도 실제로 사람을 치료하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이 존재한다. 결과적으로 2천년간의 임상시험을 거쳤다는 게 큰 이유가 아닐지.”, “대체 동맥 한 가닥으로 게다가 의사의 손가락 굵기에 따라 바뀌는 대략적인 지점으로 특정 장기의 상태를 파악하는 게 가능할까? 물론 과학적 근거는 없다.”, “생각해보면 과학적 근거가 있다 한들 그게 또 어떻단 말인가. 실제로 과학적인 혈액검사와 소변검사, 엑스레이 촬영을 했지만 서양의학은 날 구해주지 못했쟎아. 그래서 여기에 왔는걸.”, “한약은 오래 먹어야 듣는다던데, 그렇게 빨리 효과가 난다면 나도 가볼까. 어째 요즘엔 팔다리가 축축 늘어져서 말이야.” 


긴 역사속에서 여전히 존재하는 한의학의 수요

 

한의사의 진단은 뭔가 의심쩍고 과학적 근거는 없어보이는 많은 지점들이 있지만 현대의학이 있는 오늘날까지도 한의학의 수요는 존재하고 있으며 긴 역사 속에서 임상시험을 거친 경험치를 통해 제한된 영역이지만 일정한 의료적 기능은 해내고 있는 것 같다는 것이 한의학에 대한 이들 대화의 주된 내용이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은 <중의기초이론>이라는 책을 공부하면서 한의사의 말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그 한의원이 아무래도 이상한 것 같으니 가지 말라고 말리는 지인들을 설득까지 해가면서 그 한의사의 치료를 받으려고 애를 쓴다. 

“기(氣)라는 단어에선 뭔가 수상한 이미지를 떨칠 수 없지만 서양의학으로 번역하면 대사, 소화흡수, 신경계 기능이라고 할 수 있는 모양이다.” 혹은 “나는 신이 약해졌다고 진단받았는데 그것도 충격과 불안이 신을 상하게 만들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칠정이 스트레스인 것이다”라고 정리해가며 한의사의 언어를 본인이 새로 습득한 한의학 지식과 기존의 상식으로 이해해가는 주인공의 모습은 한의대 갓 입학한 신입생처럼 귀여운 느낌을 준다.   

또한 소설 속의 한의사는 환자에게 현대의학과 한의학의 차이를 자세히 비교, 설명하며 환자에게 동의를 구하고 치료의 전 과정을 친절하게 설명한다. “서양의학에서는 ‘이 병에는 이 약’이라는 식이지만 동양의학에서는 ‘병에 걸린 당신은 이런 타입의 사람이니까 이 약’이라는 방식으로 치료를 한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환자의 기초체력, 더위를 잘 타는지 추위를 잘 타는지 등의 체질, 약하게 타고난 부분, 지금 약해져 있는 부분, 병의 시간적 경과 같은 개인정보를 따져보고 그때그때의 상황에 맞춰 종합적으로 진단하죠. 서양의학적으로 같은 병명인 것도 증이 다르면 사람에 따라 약이나 치료법이 달라지는 경우가 있어요. 동양의학은 자연치유력에 기대는 면이 컸던 고대의학이 밑바탕이기 때문에 개인이 가진 근본부터 치료해나가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답니다.”, “한방에는 표치와 본치라는 개념이 있어요. 문제가 되는 증상을 우선 치료하는 것이 표치입니다.”, “동양의학은 서양의학과는 달리 정확한 수치가 없쟎아요. 물과 불이라느니 사기와 정기라느니 모두 상대적이랄까. 시소처럼 균형 관계로 생각하죠. 그 시소가 계속 움직이는 거예요. 어느 정도까지 올라가면 이번에는 내려가고 끝까지 내려가면 다시 올라오는 겁니다. 계속 변화하면서 원래대로 되돌아와요. 자연과 마찬가지로 사람의 몸은 끊임없이 변하고 또 순환한다는 사고방식이죠.” 

환자에게 치료에 대한 설명을 자세히 들려주고 그 환자는 예습, 복습으로 한의사와의 대화를 공부해가며 이해하고 한의사의 말을 끝까지 믿고 잘 따른 결과 주인공의 원인 불명의 두근거림은 다 나았고 그 한의사는 환자에게 “건강해져서 다행이네요”라는 말을 건네며 진료를 마무리한다. 그야말로 아름다운 소통이 잘 작동하는 건강한 진료실의 풍경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 이 글의 장르는 ‘소설’이다. 작가 나카지마 다이코가 지어낸 이야기인 것이다.   

 

 

보약, 언젠가부터 사은유적인 단어로 전락 

 

3(보약인기시들).jpg

소설 속에서 한의사의 처방과 복약지도에 성심과 성의를 다하여 치료에 임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비현실적으로 여겨졌던 이유는 실제 임상에서 보약 혹은 한약에 대한 일반 환자들의 태도와 많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소설 속 주인공과 달리 보약을 권유받았을 때 대부분의 환자들은 비싼 약값에 대한 부담(더 저렴한 다른 대체제가 너무나 많다), 효과에 대한 의심(비용을 치룬 후 기대 이하의 효과가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한의사의 충분치 못한 설명(일단 믿고 먹으라는데 근거가 너무 취약함) 등으로 부정적인 선입견에서 비롯된 거부감을 가지기 쉬운 게 사실이다. “보약”이라는 용어는 언젠가부터 사은유(dead metaphor; 이미 굳어져 발생 당시의 신선감이나 생명감을 상실한 은유)적인 단어로 전락한 느낌이다. 

“요즘 누가 보약 먹나요?”, “보약이 필요 없어요”, “보약은 따로 있다, 바로 제철음식”은 VJ특공대나 생생정보통의 맛집 영상들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단골 자막들이다. 인터뷰하는 대부분의 시민들은 하나같이 “보약은 필요 없다!!”고 샤우팅을 해대며 최선을 다해 게걸스럽게 먹는 장면을 연출한다. 2016년 8월 한국소비자보호원은 한의진료의 부작용을 공개하며 특히 효과를 과장한 한약 복용에 소비자들의 주의를 당부하기도 했고, 2019년 4월에는 통풍치료한약 ‘동풍산’에 덱사메타손을 섞어 판매한 한의사가 약사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되기도 했으니 이쯤되면 보약은 필요 없고 한약은 유해할 수 있다는 ‘편견아닌 편견’이 형성되지 않기가 어려워 보인다.   

보약의 이미지가 이러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녹용의 원칙은 깐깐한 정관장이 잘 지켜나갈 것이다. 또한 국산 한약재와 러시아산 녹용을 직접 선별하여 제조했다는 쇼닥터표 공진단은 홈쇼핑 채널에서 일년내내 할인이 진행 중이며 늘 아슬아슬하게 마감임박이다. 동네 약사님들은 몸이 예전같지 않다면 바로 경옥고를 먹어야 할 때가 온 거라며 약국을 방문하는 웬만한 환자들에게 면역력 강화에 탁월한 약국 경옥고를 적극 권유 중이다. 

보약인기가 시들하다며 한의계의 위기를 걱정해주던 MBC 뉴스가 2006년, 환자들이 외면하는 한의학에 과연 해법이나 있겠냐고 질문을 던지며 홍삼과 건기식이 1년 새 28% 성장한 것과 대조적으로 SBS 뉴스는 2012년 한약재 매출은 같은 기간에 30% 하락 중이라고 보도했다. 

2019년 국정감사에서 약사 출신 한국당 의원 한 분이 강하게 질책했던 첩약건강보험은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 예정이고 그 결과는 일반 한의사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원외탕전원들의 끝도 없는 홍보 경쟁은 날이 갈수록 어지럽기만 하다. 2020년 한의학 그리고 보약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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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와 환자의 아름다운 소통…거의 모든 임상한의사들의 일반적 모습 

 

올해는 내가 한의사 면허를 취득하고 20년째가 되는 의미있는 해이다. ‘전통의학’이라는 애매모호하고 어정쩡한 존재성, ‘민족의학’이라는 근거 없는 자부심 그리고 ‘민속의학’이라는 의사들의 조롱 이 세 가지 키워드는 1993년 한의대생으로 한의계에 입문한 그 순간부터 2020년 오늘날까지도 나의 존재를 지지해 주면서도 끊임없이 번뇌를 유발하는 삼각편대였다. 

그 삼각형의 세 꼭지점들은 갈수록 날카로워지면서 한의사로서의 자존감을 심하게 위축시키고 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난 20년처럼 앞으로의 20년도 임상의로서의 길을 끝까지 걸어가려고 한다. 

<읽는 보약>에 등장하는 한의사와 환자와의 아름다운 소통의 모습. 그것은 다름아닌 나의 모습이기도 하다. 아니, 나를 포함한 이 시대의 많은 한의사의 모습일 것으로 확신한다. 초진부터 재진 그리고 치료종료로 이어질 때까지 그 환자들이 경미하던 심각하던 긴장을 놓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그들의 지위에 관계없이 차별하지 않으려 애썼으며, 그들이 현대의학이 주류인 이 시대에 한의사인 내 앞에까지 오게된 이유를 귀기울여 들으려 했다. 

그리고 나를 찾아온 목적을 반드시 이루고 진료실을 떠날 수 있도록 혹 그럴 수 없는 경우 치료가 가능한 타 병의원으로의 빠른 전원을 통해 한의학에 대한 불필요한 오해가 없도록 환자와 보호자 모두에게 최선을 다했다.      

제주도 출신 발라더였던 진시몬이 2015년 트로트로 전향하여 발표한 노래가 <보약 같은 친구>이다. 그 가사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자식보다 자네가 좋고 돈보다 자네가 좋아. 자네와 난 보약같은 친구야. 사는 날까지 같이 가세. 보약같은 친구야.” 

보약같은 친구도 좋고 그리고 친구같은 보약은 더 좋다. 

<읽는 보약>에서 보여준 아름다운 소통력을 교훈삼아 대한민국 방방곡곡에서 ‘보약같은 한의사’들이 되어준다면 ‘친구같은 보약’, ‘보약같은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전통’이라는 무거운 그러나 의미있는 이름을 짊어진 트로트와 씨름의 전성기를 목격하며 2020년 버전의 ‘한의학의 새로운 전성기’를 기대해 보는 바이다.

 

한의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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